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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월하정인’ 달은 초승달 아닌 1793년 8월 21일 ‘부분월식’

합격한사람 2011. 7. 3. 23:24

'밀당'중인 혜원 '월하정인' 밤 11시50분에 그렸다?

[동아일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이 1793년 8월 21일(정조 18년)에 일어났던 부분 월식을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태형 천문우주기획 대표는 1일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달은 부분 월식처럼 볼록한 면이 위쪽(점선 원)으로 향해 있다”며 “보통 초승달이라면 달의 오른쪽 부분이 환하게 빛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윤복이 활동했던 시기에 서울에서 관측된 월식은 1793년 8월 21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월식은 매년 있기 때문에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아랫쪽은 이 대표가 만든 부분 월식 상상도. 이태형 천문우주기획대표 제공

 

초승달이 뜬 야심한밤, '밀당'을 주고받는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사진)은 정말로 한밤중에 그려졌을까?.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 작품 월하정인을 그릴 당시 부분월식이 일어났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2일 이태형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는 "혜원의 ‘월하정인’ 속 ‘달’의 모양과 위치 등을 근거로 추정한 결과 이 그림은 1793년 8월21일 밤 11시50분께 그려졌다"고 추정했다.

어떻게 신윤복 월하정인이 그려진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당초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에 실린 신윤복 월하정인은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시점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태형 교수등에 때르면 첫 번째 단서는 그림 속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 주기로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과정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월식이 있을 때만 신윤복 ‘월하정인’ 속 달의 모양을 볼 수 있다는 것.

또 그림 속 글을 읽어보면, 시간대가 ‘夜三更(야삼경)’으로 적혀 있다. 이것은 밤 12시 전후의 ‘자시(子時)’를 말한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며, 보름달은 자시 무렵에 가장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달이 겨우 처마 근처에 걸려 있다는 것은, 달의 남중고도(南中高度)가 낮은 여름이라는 뜻이다.

월식에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과 일부만 잠식되는 부분월식, 두 종류가 있다. 여름철 한밤중에 펼쳐지는 개기월식은 달의 왼쪽부터 가리기 시작해 오른쪽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월하정인’ 속 달 모양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추정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신윤복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사이에 있었던, 서울에서 관측 가능한 부분월식에 대한 기록을 조사했다.

그 결과 1784년 8월30일(정조 9년, 신윤복 26세)과 1793년 8월21일(정조 18년, 신윤복 35세) 두 차례의 부분월식이 확인됐다.

그러나 1784년의 경우 8월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지역에 3일 내내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월식이 나타났어도 관찰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반면 1793년 8월21일(음력 7월15일)에는 오후에 비가 그쳐 월식 관측이 가능했다. ‘승정원일기’에도 “7월 병오(丙午·15)일 밤 이경에서 사경까지 월식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교수는 “‘월야밀회(月夜密會)’, 정변야화(井邊夜話)‘ 등 다른 그림의 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신윤복은 사실과 무관한 상상의 달을 그리지 않았다”며 “특히 ’월하정인‘의 위로 볼록한 달은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인 만큼, 임의로 그런 달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