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말한다§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는 만화들

합격한사람 2005. 9. 1. 22:11

서유기 개괄: 불교가 융성하던 당태종 때 현장은 각기 다른 주석을 달고 있는 불경의 진의를 명확히 구명하기 위한 학문적 필요성에 의해 천축기행을 결심하게 된다. 순례를 떠나기 위해 다른 승려 몇명과 순례단을 결성하여 조정에 여행 허가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이 얼마전부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단절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비밀리에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629년(627년이라는 설도 있음) 장안을 떠나 17년동안 천축국을 떠돌며 657권의 불경을 가져왔다. 이후 그의 제자의 의해 대당서역기라는 기행문이 나오게 되면서 그의 이야기가 사회에 퍼지고 그의 여행담에 여러가지 살이 붙어서 송대에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및 갖가지 괴물들이 등장하고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 오승은이 전해지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보태 삼장과 그 일당들이 81가지 고난을 겪고 천축에서 불경을 구해온다는 소설 `서유기`를 만들게 된다.

서유기의 주요 등장인물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를 들 수 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이름은 원래 손오공(孫悟空), 저오능(猪悟能), 사오정(沙悟正)으로 관음보살이 서역에 불경을 가지러 올 사람을 찾기위해 장안으로 가는 도중 만난 이들에게 내린 오(悟)자 돌림의 이름이었으나(손오공은 스승 수보리조사에게 받은 이름으로 예외이다) 이후 삼장법사를 만나 손행자(孫行者),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이란 법명을 얻게 된다. 신기한 것은 오공과 오정은 원래 이름으로 기억들 하는데, 저팔계만 삼장법사가 지어준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이들의 성격 또한 판이한데, 오공이 용맹하며 불같은 성격이라면 저팔계는 간계하고 탐욕스러우며, 사오정은 충직하지만 약간 미련하고 비관주의적이며 삼장법사는 독실하고 진지한 무능력자로 그려진다. 참, 용왕의 아들이었던 백마도 있는데, 이야기 전개 중엔 거의 말이 없다.

사실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는 삼장의 행적이라기보다 서역 각지의 풍습을 기록한 기행문에 가깝다. 따라서 서유기의 올바른 원류를 찾자면 삼장법사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대당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이 될 것이다. 어쨌든, 수년에 걸친 삼장의 여행을 소재로한 서유기는 여행의 당초 목표와 달리 요괴와 괴물들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동양 최고의 판타지가 되었고, 만화로 재창조하면서 작가적 창의력에 의해 어떤 변화도 가능한 자유로운 이야기가 되었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요소를 가지고 있다.

1. 손오공(비인간)
2. 삼장 혹은 이에 상응하는 인도자
3. 오공의 의형제, 수행원 혹은 이에 상응하는 동료
3. 불경 혹은 이에 상응하는 목표
4. 시련이 있는 여행
5. 시련을 주는 절대자

이글에서는 만화로 그려진 여러가지 서유기를 소개하면서 이 요소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드래곤볼DRAGON BALL」 (1985-1995)
드래곤볼은 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650만부라는 기록적인 발행부수를 냈던 일본 최고의 만화잡지 `주간소년점프`에 연재되었는데, 드래곤볼 연재종료 직후 슈에이의 점프는 인기가 하락해 코단샤 잡지에 톱을 빼앗기는데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92년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식계약을 맺고 들어와 슬램덩크, 타이의 대모험과 함께 한국에 주간지 붐을 주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청소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더랬는데, 매스미디어에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라며 이를 비판적 시선으로 보던 기억이 난다. 사실 드래곤볼 역시 그 무삭제 컷의 선정성으로 순진한 학생들의 시선을 잡았던 게 크다.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손오공하면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먼저 떠오르게까지 만든 이 드래곤볼은 이전까지의 서유기 만화와는 달리 서유기에서 착상을 얻긴했지만 이야기는 전혀 별개로 유희적인 작은 이야기들을 반 장난삼아 즐겁게 소화해 나가서 역사성이나 사회적 이념 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어떠한 메세지도 주지 않았던 신선한 작품이란 점을 높이 살 수 있다. 물론 연재가 길어지면서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무한반복 무한성장 무한격투 만화로 모습이 바뀐 대목에서 높아진 점수를 많이 까먹지만 말이다. 초반의 설정 및 등장인물의 구성을 보게되면 허영만의 날아라 슈퍼보드와 닮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연재 시작 시기 및 일본만화 베껴 이상하게 만들기가 횡행하던 당시의 실정을 더듬어 볼 때 내용은 몰라도 그림으로 알 수 있었던 인물과 메카 설정은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허영만, 「미스터 손」 (1989 단행본 발행)


오래된 SF 영화 중에 백투더퓨쳐라는 게 있다. 개봉 당시 SF 매니아들을 열광케 했을 뿐 아니라 로라장(소년소녀들이 함께 모여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놀던 추억의 교제장소)에서 놀던 청소년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던 스케이트 보드 열풍의 시초가 되었던 게 바로 이 영화이다. 처음 허영만의 미스터 손을 접했을 땐 멀쩡한 근두운을 구름에서 스케이트보드로 바꿔버린 것을 보고 나름대로 흔히 일어나는 흥행 영화의 인기소품 차용 정도로 추측하고 그런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이와 함께 종래 물귀신으로만 그려지던 사오정이란 인물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사오정`이란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었다.

이후 정식수입된 드래곤볼을 보게되고 다시 한번 소품과 설정 차용에 관한 의심을 갖게 되었는데,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부르마는 미스터 손의 손오공과 미로(미스터 손의 등장인물로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만나게 되기까지 함께한다)의 설정과 비슷하며 비슷하게 동글동글한 자동차를 쓴다던가 하는 설정이 닮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뭐니뭐니해도 미스터 손은 불경을 구하러 서역에 간다는 고전 서유기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르며, 인물설정에 있어서도 젖이 8개 달린 저팔계와 모자를 써서 늘 중심에서 벗어난 답을 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사오정 또한 그만의 독특한 세부적 설정이지만 이들 역시 원작의 기본적 성격 설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우영의 서유기가 그러했듯 큰 줄기를 바꾸기보다 원래 이야기에 한국적 풍자와 해학이 깃든 소품과 언어유희를 덧붙여 자잘한 웃음과 재미라는 만화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던 것이다. 다른 허영만의 만화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시대의식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인데 이 점이 또 매력이자 단점이다.

고우영, 「서유기」 (1980-1981)

"웃음이 없으면 만화가 아니고 그냥 그림이지. 반드시 유머와 남을 웃겨야 하는 게 만화거든. 진실이라는 게 웃음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만화예요. 웃음 속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녹아있는 철학이 반드시 있거든……. 전달방법이 참 효과적이죠. 글은 읽기 싫어도 만화는 눈이 가지 않습니까"
- yes24 Bookian 78호 고우영 인터뷰 중 -
만화가 만화로서 한역할을 하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가의 말에서 그 옛날의 만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끼며 어느덧 다가오는 계란 한판의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고우영 만화의 특징은 중국 고전을 현대에 접목시켜 풍자와 해학을 더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시셋말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구수한 입담, 만담, 언어유희와 파격적 극의 전개는 이들을 이웃에 사는 형님, 동생인양 가깝게 그려 원작에서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고우영 특유의 세련된 그림체는 허름한 듯 우리를 안심시키고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서유기에서도 이러한 그의 실력이 발휘되지만, 특유의 비틀기가 그의 유명한 삼국지나 수호지에 비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던 차에 어딘지 고우영의 그림체를 떠올리게 하는 코이케와 코지마의 손오공을 접하게 되었다.

* 미디어의 범람으로 인해 만화가 그동안 가져왔던 역할이 축소되면서 만화는 독자감소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과 타매체에 비한 상대적 저평가를 극복하고자 만화 자체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이 늘어나 일각에서는 웃음과 재미를 주는 만화를 저급대중문화로 보는 선입관을 버리고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하여 고차원의 응용을 추구하는 연속된 글과 그림이 결합된 시각 예.술.로서 보고자 하는 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만화는 대중문화로서 예술같은 것처럼 고급문화로 분류되어 권위를 부여받아왔던 이외의 것이므로, 학문적 권위를 부여하게 되면 더이상 대중문화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만화는 대중문화로서 놔두고 대중의 선택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코이케 카즈오小池一夫, 코지마 고세키小島剛夕, 「액션 실크로드 손오공アクションシルクロード孫悟空」 (1984)
"영웅은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언제나 강한 정의는 영웅이겠지만, 영웅이 발산하는 칼이 지닌 무서움은 영웅의 시선의 각도가 일그러질 때 멋진 지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옥은 얼마나 밝고 정의의 노래에 가득 차 있건 간에 역시 지옥에 지나지 않는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 시대에는 농담이나 웃음이 잔뜩 있지만, 그런 웃음을 삼가지 않는 시기야말로 웃음은 시험당하고 있는 것이다."
- 마스무라 히로시ますむらひろし,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アタゴオルは猫の森」 의 아타고올 여파 중 -

이 작품에서 삼장은 비만에다 전신이 호색덩어리인 추한 파계승으로 여자들을 보기만 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농락하는 나태하고 교활하고 탐욕으로 가득찬 존재로 그려진다. 팔계와 오정 또한 삼장처럼 호색적 존재이다. 이에 반해 손오공은 인내와 배려가 가득한 인물로 삼장이 가는 곳마다 제멋대로 사고를 치면 뒷수습을 해주며 주인에게 진심어린 충고하는데, 소귀에 경읽기로 주인은 충직한 오공의 말을 무시하고 새로운 여색의 모험을 찾아 돌진한다. 그리고 괴물들은 삼장의 침략자적 행위에 굳세게 저항하는 인간적 인물로 그려지며 오공과 괴물들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고, 세상의 부조리에 고통받다 파멸해간다. 석가 또한 오공에게 서역까지 경을 구하러 가면 인간의 신분을 주겠다고 하지만, 실제는 이 여행을 구실로 마음에 두고있는 관음(여자로 묘사됨)과 성교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으며, 관음은 오공의 성실함에 반하여 서로 사모한다. 서유기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줄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이야기를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등장인물의 성격역전 뿐 아니라 그동안 `중생의 구원을 위하여`라는 역사적 목적의지 아래 서유기에서 의문시 되지 않던 석가의 의도를 악마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허무주의적 해학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 또 괴상하고 또 구역질나는 욕정의 끈적함이 뚝뚝 흘러 넘치는 서역여행은 실크로드란 이름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길임을 제시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유기를 소재로 변태성욕 내지는 포르노를 그리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러한 작품들은 보통 표지에서부터 말초적 신경을 자극할 뿐 정체성을 흔들어 놀라움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諸星大二郎, 「서유요원전西遊妖猿伝」 (1985)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80년대 이후 발표된 일본 중국문학자의 서유기는 물론, 고대 중국의 전설이나 민간신앙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료를 모두 섭렵하여 이를 토대로 전혀 별개의 독창적 이야기를 꾸밈으로써 만화가 오랜만에 서사시적 상상력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 서유요원전은 서유기 물 중에서도 가장 학문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앞서 예를 든 코이케, 코지마의 서유기도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대중적 눈으로 봤을 때 그림이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다. 소녀만화풍의 깔끔하고 귀엽고 샤프한 카리스마적 풍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만화풍의 선이 굵고 액션이 화려한 그림 역시 아닌, 어찌보면 지저분해서 시대에 뒤떨어진다고까지 생각되기까지 해서 한장 들추고 바고 책장에 꽂아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시리즈물임에도 여간해서는 찾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1회만 감상해도 그것의 흥행여부와 작품성까지 파악해버리는 디엔드(「코믹 마스터 J」 라는 만화에 나오는 만화가.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만화를 보면 터미네이터처럼 찾아가 완결시켜버린다.)가 봤으면 뭐라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거대한 역사의 의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2000년도 테즈카 오사무 상 수장작.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 「나의 손오공ぼくの孫悟空」 (1953~60년대)

필자가 접한 1차사료로 기억속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유기는 아마 테즈카 오사무의 것으로 여겨졌던 만화영화이다. 여기서 오공은 오사무 특유의 귀엽고 동글동글하지만 호전적이며 삼장법사보다도 제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온 정열을 쏟는 재밌는 아이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오사무는 1953년 `나의 손오공`이란 만화를 그렸었고 1967년 `오공의 대모험`이란 제목으로 만화영화화 되었다는데, 필자는 의례 그러하듯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잊을만할 때 재방되던 일본만화영화 중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완결었던 손오공을 명절특집으로 우연히 보았던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손오공이 그다지 고집세지 않은 어린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디즈니 에니메이션처럼 표정이 풍부하고 개인주의적이며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손오공의 귀가 이상할 정도로 큰것은 이 시기 오사무 만화 주인공에 공통된 특징으로 `철완 아톰`의 아톰의 뿔은 그것이 변형된 형태입니다. 검고 둥근 코는 원숭이라는 표시입니다. 테즈카는 지겨울정도로 다뤄온 손오공의 이야기와 한 획을 긋기 위해 제목에 `나의`라는 형용사를 붙여 `일단 맛이 다르지~`라는 자세를 앞세웁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초조해진 작가가 삼장법사와 역할을 교체해서 스스로 취경과 괴물퇴치 여행에 나서기도 하죠."
-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 「만화원론漫画原論」 -

미네쿠라 카즈야峰倉かずや, 「최유기最遊記」 (1997)
최유기는 소녀만화로서 드물게 서유기를 소재로 한 만화인데, 작가인 미네쿠라 카즈야는 그동안 동인지 활동을 해오다 이 작품으로 첫 단행본(정식 출판물)을 냈다. 인기 아이돌처럼 어느 한컷도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컷을 찍지 않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뒤틀린 사랑을 갈구하는 초절정 꽃미남 양아치 주인공들은 `심장을 찌르는 그 눈동자로 나를 천국에 보내줘` `그대의 섹시한 입술로 사랑도 생사도 마셔버리기를` 등등의 소름끼치도록 카리스마 넘치는 말빨로 뭇 독자를 사로잡는다. 상당히 괴상하고 정신없는 이들 덕분에 이야기 전개는 삼장일행이 느린 육로로 가게한 까닭을 묻는 말에 `그편이 더 재밌을테니까`라고 답한 관음의 대답처럼 휘둘려 과연 어떤 결말이 날 지 상당히 궁금하게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엔 웃음이 없다는 점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과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듯한 신들의 이야기는 종이위에 뿌린 검은 잉크의 양만큼이나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다른 만화엔 흔히 등장하다 못해 가끔 주인공 을 밀어내기까지 하는 2등신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웃음을 터뜨고자 나오는 대사도 날카롭고 뾰족한 분위기에 잘려 쓴웃음만 짓게 하며, 등장인물들의 카리스마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감히 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걸 부정한다. 철저히 독자를 의식하지만 또한 철저히 외면하는 양면적 주인공들은 그들의 초기설정과는 무관하게 서로닮은 동일인물로 보일 때도 있다.

지금까지 7종류의 서유기에 대하여 돌아보았지만, 이외에도 더욱 다양하고 많은 패러디와 리메이크 만화가 존재한다**. 이런 만화들은 동일한 소재로 부터 출발하여 나름대로의 해석과 서로다른 전개를 보이며 각각이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성을 가지는데, 그 종류가 다른 고전에서는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며 그 잠재력 또한 끝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화가 대부분 일본만화라는 점에 주목하자. 앞서 들었던 우리만화 서유기는 서유기 이야기를 그 자체로서 존중하며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이야기전개가 주류이고, 일본의 서유기 변형은 끈질긴 집착에 의해 과감해진 심지어는 서유기라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자유도를 보이는 다양한 시대정신과 시대상의 반영이 주류를 이룸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 차용만으로도 서유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여 익숙한 동질성을 부여하고 이와 다른 수많은 세상사 내지는 세계관을 나열하면서도 이들을 결국엔 이를 다시금 서유기라는 소재 안에 축소해 놓은 데에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데, 그 압도적인 깊이와 응용에 과연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는 만화를 우리의 독자적 문화로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라며 약간은 주눅들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필살기 여럿 가진 고수보다 필살기를 하나가진 뚝심있는 차돌 또한 나름의 매력이 있게 마련이라 다시금 자신을 갖게 되기도 한다.

**서유기를 소재로 한 만화는 이외에도 야마구치 타카유키山口貴由의 「오공도悟空道」, 아로이 로무葵ろむ의 「아소봇 오공アソボット五九」, 손태규의 「반서유기」, 고진호의 「서유기 플러스 어게인」 등등이 있다.

가끔 검색어를 <<서유기>>로 쳐야할 때<<최유기>>로 찾는 경향이 저도 중증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