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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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한사람 2006. 2. 16. 21:07
 아랍서예는 글을 쓰는, 혹은 그리는 패턴과 복잡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아랍서예의 섬세함 -알렉산드리아인 철학자 유클리드는 영혼의 기술(記述)이라고 불렸다- 은 지난 13세기 동안 이른바 '아랍인의 붓'으로부터 나왔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서예는 수기(手記)이고, 기록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아랍세계에서는 두드러진 역사를 가진 일종의 예술로 발전하였다. 서예의 아름다움은 일반적으로 '쓴' 것과 확연히 구분되며, 수기가 일종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서예는 미학적인 차원에서 표현된다.
   아래의 작품은 특이하게 동물모양을 사용하였다.


   역사학자들끼리는 아랍서예의 기원과 발원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인다. 하지만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나바타인(Nabataean)에 의해 발달되었으며, 약 기원전 4세기서부터 기원 후 7세기까지 중동지역에서 널리 쓰인 서부 아람어 방언이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새로운 이슬람 사상이 전파되어 감에 따라 아라비안반도의 아랍어는 국제 통용어로서의 아람어를 대체하였다. 아랍인들이 알파벳을 갖기 이전부터 구어시(口語詩) 전통이 매우 발달했다. 구어로 만들어진 시는 기억에 의해 세대와 세대간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아랍문학은 꾸란 초기 시대부터 전문 암송가에 의해서 전해졌다. 꾸란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후 15동안은 오로지 말로만 존재했다. 칼리프 오토만('Uthman, 644-656재위)은 이러한 방법으로 전승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 꾸란의 편찬을 지시하였다. 7세기에는 아랍문자의 자음과 장모음만을 사용해서 기록하였다. 그래서 단모음은 읽은 사람들마다 발음이 달랐고, 단어에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쓰여진 단어인 경우는 특히 더욱 심하였다. 그래서 후에 글자 위에 점(일종의 모음 기호)을 더하여 소리를 구별하였고, 최종적으로 933년 현재의 모습의 꾸란이 완성되었다.

 


   이슬람 초기 시대의 꾸란
   중세유럽에서는 단지 성직자만이 일생동안을 종교 서적들을 읽고 썼다. 아랍 선조(先祖, 초기 무슬림세대)도 꾸란을 필사(筆寫)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은 사람이나 동물을 성(聖)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서예가들은 그들의 표현도구를 아랍 문자에서 찾고, 고도로 복잡하고도 유려하게 발전시켰고 백년 내에 아랍서예는 최고의 예술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서예는 궁전과 모스크에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천, 카페트, 장식품을 비롯하여 일반 문학을 기록하는데도 사용하였다. 그 당시의 서예가(예술가)들은 어떤 형태의 서체 -예를 들면 쿠픽(Kufic), 툴루트(Thuluth)와 유명한 나쉬(Naksh)체-로도 글을 쓸 수 있었다. 다양한 아랍어 서체 아랍서예는 예루살렘의 황금사원(혹은 황금돔, Dome of the Mosque of the Rock)에서 부터 페르시아의 이스파한(Isfahan) 모스크까지 넓은 지역에 거처 사용되었고, 무슬림 건축물을 시각적으로 단일하게 보이는데 일조를 하였다. 또한 많은 유럽의 교회, 예를 들어 로마에 있는 성 피터(Saint Peter)교회에도 아랍서예 장식이 도용되었다. 오늘날도 서예 전통은 모든 아랍/이슬람 세계에 종교, 교육, 정부, 상업 건축물에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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