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말한다§

압생트 - 마시는 법

합격한사람 2011. 7. 31. 14:34

<토탈 이클립스>에서 압생트가 나와서 흥미를 가지게 됐습니다.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초록색 ㅎㅎㅎ

영화를 잘 보시면 물을 넣어도 색이 안바뀜 ㅋㅋㅋ

 

빅터 올리바 作 “압생트 마시는 사내”

 두 화가가 노란 집에서 독주를 마시고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일방적으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쪽은 깡마른 쪽이다. 살집이 있는 쪽은 매사가 귀찮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모욕스러운 말을 한마디씩 던진다. 반면 소리 지르는 쪽의 이야기는 횡설수설이다.
 상대방의 작풍에 대한 불만 같다가도 어느새 신의나 우정 같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
, 그리고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과거의 사소한 기억들, 깡마른 화가의 화제는 전기에 쏘인 벼룩처럼 정신없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화내던 쪽이 다른 쪽이 툭 던진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욕실로 달려가더니 접이식 면도칼을 가지고 돌아온다
 술에 취해 비척거리며 그 칼로
죽여버리겠다고 상대를 위협해보지만 상대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그 친구의 입가에 슬몃 보이는 비웃음을 칼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화가는
발작적으로 자신의 왼쪽 귓볼을 잡아당겨 잘라버린다

 아릿한 통증과 볼을 타고 턱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정신이 들어 보니 어느새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도망갔을 테지,
 자신의 귓볼을 자른 화가는 신문지를 꺼내 잘린 살조작을 되는 대로 포장하더니
 조악한 흑백 양배추처럼 변한 그 신문지 뭉치를 들고 낄낄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1888 고흐자해사건입니다. “스스로의 귀를 자른 천재화가의 광기라는 시대적절한 낭만을 풍기는 이 “19세기 보헤미안 엽기사건은 언제나 압생트 괴담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되곤 합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이 술에 중독된 고흐는 환각 속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을 보였다는 이야기죠. 압생트와 고흐의 관계는 단순히 광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흐의 환상적인 노란색도 사실은 압생트 남용에 의한 황시증(눈에 노란색 셀로판을 씌운 듯 세상 모든게 노랗게 보이는 병)이라는 질환 때문이라는 설에 이르면 고흐를 키운 건 8할이 압생트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진짜 압생트는 마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무시무시한 환각물질일까요?


마주의 탄생

압생트는 18세기 말 스위스 서쪽 노이샤텔지방의 꾸베지역에 거주하던 피에르 오르디네르(Pierre Ordinaire)라는 프랑스인 의사가 만병통치약으로 개발한 약술이라는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디네르는 깡마른 몸에 농구선수급의 장신으로 애마인 로켓을 타고 산악지역인 발드트라베르(val de travers)지방을 누비는 모습이 사뭇 동키호테 같았던 기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 같았으면 세상에 이런일이에 소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죠. 프랑스혁명의 어지러움을 피해 스위스로 도망간 이 의사선생은 시골인 쿠베라는 곳에서 동네 약방 비슷한 걸 경영하고 있던 묘령의 미녀 자매가 사는 집에 거처를 잡고(왠지 일본만화 같은 전개) 시골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며 살아가다 19세기의 시작을 못보고 돌아가셨다고 하는데요 이 괴짜 의사의 이야기는 낭만과 오해로 가득한 압생트 전설의 처음을 장식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서양의학이 미생물학의 발달로 뭔가 과학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겨우 몇 세기 동안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 전까지는 의사의 주수입원이 자신이 개발하거나 전가의 비법으로 만든 수상한 만병통치약의 판매였다는 점은 동양의 민간의학과 별로 다르지 않았었죠.

당시의 만병통치약은 간단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생약성분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되는 약초나 꽃잎 같은 식물 생약성분과 여기에 화끈한 약효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섞습니다. 약간은 비과학적으로 들리게 이야기 했지만 많은 생약성분이 알코올에 용해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라고도 생각됩니다.

오르디네르 역시 알프스 지방의 산바람과 햇살을 맞고 자란 싱싱한 약초를 따서 알코올에 섞어 증류해보는 실험 끝에 1792년에 드디어 오르디네르식 만병통치약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영롱한 에메랄드 빛깔 때문에 녹색 요정(La Fée Verte)”이라 불리기 시작한 이 약물은 원샷하면 갑자기 열기가 돌고, 주위의 여자들이 예뻐 보이며, 기운이 나고 용기가 솟는 약효가 있었고(당연하지 술이니까) 제법 맛도 상쾌하고 먹고 푹 잤더니 감기가 떨어졌어요라는 식의 입소문이 돌면서 그 지방에선 꽤나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8세기 말 당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저런 식의 만병통치약에 대한 믿음은 도시 지역에서는 없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노이샤텔 같은 깡촌에선 먹히는 장사법이었던 듯.

하지만 (편리하게도) 그 약을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르디네르는 노환으로 쓰러지고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던 약방 자매에게 압생트의 비법을 남기고 죽어버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 받아 자매는 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만병통치약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탄생설화의 요지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개발자는 이 약방자매 쪽이고 단지 마케팅을 위해서 오르디네르라는 유명한 (게다가 마침 자기네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의사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볼 수도 있겠죠. 사실 오르디네르 선생이 꾸베 지방으로 쫓겨오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는 비슷한 레시피의 만병통치약이 무려 신문광고까지 해가면서 팔리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프랑스에서 온 그 괴짜 같지만 유능한 닥터하우스가 개발한 약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 녹색요정은 몇 년 새에 커다란 인기를 얻었고 결국엔 프랑스 자본가에 의해 픽업되어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됩니다. 

 

약입니까 술입니까?

문제의 약방자매로부터 제조비법을 독점 구매해 스위스에 공장을 차린 건 군인 출신의 사업가 다니엘 앙리 두비와 그의 사위인 앙리 루이 페르노였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페르노리카의 그 페르노 말입니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칼루아, 말리부, 압솔루트 같은 잘 알려진 주류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주류업계의 공룡 페르노리카의 시작은 바로 압생트였다는 거죠.

 

 

 

프릿츠 듀발의 쓴쑥(압생트) 추출액 이라는 초기의 라벨을 보명

 

확실히 약으로 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비와 페르노 역시 처음에는 명의 오르디네르 전설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프랑스인 의사가 스위스의 상쾌한 자연에서 만들어낸 상쾌한 약 혹은 술이라는 느낌으로 제품 이미지를 잡고 제품명 역시 녹색요정이라는 비과학적이고 동화적인 별명 대신, 압생트 추출액같은 약품 같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약술내지는 몸에 좋은 술이라는 말은 확실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업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전략이죠. “와인은 심장병을 예방해요라는 식이나 생약성분이 들어있어 강장효과가 있어요라든가 오줌발이 요강을 뒤집어서 복분자라네라든가결국 몸에 해로운 것을 팔고 있기에 약효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아이러니컬한 제 발 저림인 셈입니다. 어쨌든 이런 식의 마케팅 전략이 먹혔는지 아니면 판매자의 군경력과 인맥이 먹혔는지 압생트가 처음으로 대량 소비되기 시작한 곳은 바로 군부대였고 그 목적도 기호품이 아니라 약품이었습니다.

 

1830,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공하여 제2기 식민제국을 열기 시작하던 그 시절, 아프리카에 파견된 프랑스 주둔군을 괴롭힌 것 중 하나는 말라리아나 이질 같은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습니다. 내성이 없는 자국 군인들이 픽픽 쓰러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프랑스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예방학이나 미생물학이 발달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그저 그냥 비슷한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여러 가지 약을 전선에 쫘악 돌려보고 현지에서의 임상효과를 보고 좋은 듯하면 계속 써보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전선에 투입된 약품들 중 하나가 바로 압생트였습니다. 아마도 압생트에 대한 보고는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압생트, 효과가 최고임. 말라리아 및 이질에도 좋거니와 용기도 샘솟음. 더 많이 보내주기 바람. 근일 내 낙타고기 안주로 함께 전군 회식 예정

결국 정식으로 풍토병 예방약으로 인정받게 된 압생트는 프랑스군의 1844년부터 3년 동안 정식보급품으로 지급됩니다. 예방약이기 때문에 상시 의무적으로 음용해야하는 행복한(?)물품이었다고나 할까, 프랑스 군인들은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이걸 물 혹은 와인에 타먹었다고 합니다. “제라르 하사, 기분이 꿀꿀한 거 보니 왠지 말라리아에 걸릴 것 같은데 예방차원에서 한 잔 어때혹은 이질예방식을 실시한다! 각자 앞에 놓인 샷글라스에 일방장전! 목구멍으로 투하!”라는 식으로 프랑스 군인들은 압생트의 상콤쌉싸름한 맛에 점점 길들여 지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압생트 맛에 길들여진 군인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프랑스 국내의 녹색 쓰나미는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시절의 녹색 동반자

19세기 후반기의 프랑스, 특히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르누보가 덩굴처럼 거리를 감았고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세계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에 기분 좋게 취해있던 부르주아들을 캉캉댄서들이 속바지를 내보이며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모네가 있었고 마네가 있었고 르느와르가 있었고 드가가 있었고 고흐가 있었고 고갱이 있었고 로트렉이 있었죠. 그리고 물론 압생트가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전선에서 보급품으로 마시던 압생트를 즐겨 찾기 시작하자 파리 곳곳의 술집은 압생트를 구비해 놓기 시작했습니다. 군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제리 전쟁에서 군인들이 즐기던 술이라는 이국적인 낭만 때문에 찾았죠. 1850년 대 초 만하더라도 압생트는 나름 가격이 센 편(위스키보다 싸고 맥주보다 비싼)이었기 때문에 주로 유행에 민감한 부르주아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특히 상콤쌉싸름한 맛 덕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한 식전주로 음용되었는데 군에서도 인정한 건강주라는 술의 배경 때문이었는지 1870년대에 이르러 압생트는 1500여 종의 리큐르/리커들이 격전을 벌이는 프랑스 식전주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저녁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5~6, 사람들이 일제히 압생트를 마시는 바로 그 때를 가리켜 녹색시간이라고 부를 정도로 압생트는 대량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인기가 있다보니 오리지널 양조회사인 페르노는 점점 공장을 늘려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갔고 증류소를 가진 프랑스 주류업자들은 너도 나도 다투어 압생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페르노에서 레시피가 유출되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알코올에 허브를 넣고 증류하는, 비교적 손쉽게 만들어 팔 수 있는 술이기에 금방 흉내 낼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강한 맛이기에 더욱 값싼 재료로 대체해도 딱히 티가 안 나는 압생트의 특성상 많은 후발업자들은 조악하게 만들어진 압생트를 염가에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가제품은 같은 판매조건에서 페르노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대비 대략 3분의 1가격에 팔리곤 했는데 하지만 고급클럽에서 마시는 페르노 압생트 한 잔(30ml원액+) 60상띰인데, 저가 제품의 경우는 도매가가 1리터에 60상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최고급과 최저급의 가격차이는 30배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 만큼 많은 계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프리미엄급으로, 없는 사람들은 싸구려로 압생트를 즐기는 식으로 한가지 종류의 술이 여러 계급에서 동시에 사랑 받는 그야말로 국민주류 와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데뷔 1세기도 지나지 않는 신참에게 벌어진 겁니다.

값싼 압생트의 주 소비층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들뿐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의 문화를 주도했던 예술가계층, 흔히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던, 인상파화가들을 비롯해서 자연주의문학작가들, 그야말로 이 시절의 문화를 선도하던 사람들은 압생트의 취기 속에서 영감을 찾았습니다. 이 섬세한 술꾼들이 온갖 기예를 동원해 압생트를 그림과 글과 음악으로 찬미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압생트 숭배는 압생트에게 문화적 정당성과 낭만을 부여했습니다. 이 덕분에 보헤미안문화의 주소비계층인 부르주아 역시 계속해서 압생트에 얽힌 낭만을 소비하기 위해 압생트를 더더욱 소비하는 하나의 공고한 트렌드가 완성되게 됩니다. 그래서 19세기 말엽에 이르면 노동자는 가격 때문에, 부르주아는 낭만 때문에 녹색 요정을 찾게 된 셈이죠.

여기에 압생트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의 와인업계를 괴멸직전까지 몰고간 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병충해라는 대재앙입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1870년대 중반까지 전국 포도밭의 40%를 잃었고 와인업계는 고질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숙성해서 판매하는 제품의 특성상 그 피해는 정말 장기적일 수 밖에 없었죠. 왠지 모르게 옛날보다 묽어진 와인에 심지어는 건포도를 알코올로 우려낸 물까지 와인이라고 팔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프랑스인들은 와인에 의존했던 음주문화를 바꾸기를 강요받게 됩니다. 진짜 와인이 필요한 식사시간을 제외한 평소의 친구들과 한잔은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던 압생트로 하는 것이 대세가 됩니다. 와인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고 압생트는 참람하게도 그 자리를 넘보는 위치까지 올라오게 된거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숫자상으로 얼마나 소비되었는가 하는 수치를 넘어서 압생트가아름다운 시절의 문화와 낭만을 상징한다는 아이콘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한 영광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이 덕분에 압생트는 20세기 초에 처절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역사에서 추방되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압생트의 정체

압생트의 몰락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압생트는 어떤 도대체 어떤 술인지 알아봅시다.

기본적으로 압생트는 증류주입니다. 그러니까 발효된 술을 끓여서 알코올을 추출해 냉각시켜 모은 것이라는 이야기죠. 압생트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게 됩니다.

 1.  증류한 알코올에 아니스, 페넬, 쓴쑥(wormwood) 이렇게 세가지 허브를 빻아 넣습니다.

2.  1의 혼합물을 또 증류합니다. 무색투명한 압생트가 탄생합니다.

3.  2의 증류물을 각종허브를 넣고 우려내어 초록색으로 착색하면 완성

 

1의 단계에서 베이스로 쓰이는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세 종류입니다. 포도주를 증류시켜 만든 오드비(eau de vie, 생명의 물), 일종의 순무인 비트를 발효시킨 술을 증류시켜 추출한 비트 알코올, 보리에서 감자껍질에 이르는 다양한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시킨 그레인 알코올이죠. 이 중 가장 가격이 높고 고급스러운 건 오드비입니다. 오드비와 그레인 알코올의 차이에 대해서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드비를 증류시킬 때는 원래 과실발효주의 풍미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레인 알코올을 증류시킬 때는 원래 풍미를 최대한 지워버리려고 한다오드비는 이미 술로 소비될 수 있는 물건을 다시 증류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둘과 차이가 있습니다. (꼬냑은 꼬냑지방에서 포도 오드비를 증류시켜 2년 이상 숙성시킨 술이죠) 압생트를 처음 생산한 페르노사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이런 포도 오드비를 베이스로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최상품의 압생트는 오드비를 기본으로 만들어 진다고 보면됩니다. 오드비를 쓰는 회사의 경우에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재료인 포도의 산지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프랑스가 포도흉작을 겪을 때, 먹을 포도주도 없는 데 끓여서 오드비 만드는 건 미친 짓이라고 하던 시절 오드비의 대용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비트 알코올입니다. 당도가 높은 보라색 순무인 비트를 썰어서 몇 주간 발효시켜 만들어진 걸쭉한 비트주를 증류시켜 만들어지는 비트 알코올은 흉작이 끝난 후에도 전통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비트 알코올을 이용하는 업자들은 오드비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이건 그냥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그레인 알코올은 셋 중에서 가장 저렴한 알코올입니다. 그레인 알코올을 물로 희석하고 당을 첨가하면 희석식 소주가 되죠. 이런 그레인 알코올을 이용해 압생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원래는 압생트가 가격경쟁을 하던 시절의 산물이긴 하지만 아직도 비양심적인 메이커들은 그레인 알코올을 쓰기도 합니다.

 

1단계의 베이스 알코올의 종류 보다 3단계에서 더욱 메이커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오리지널 페르노의 경우는 선별된 쑥과 히솝, 멜리사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세인트조지라는 미국 양조장은 여기에 시트릭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 레몬밤을 쓰기도 합니다. 3의 단계는 사실 색을 입히는 목적보다도 2에서 증류된 압생트의 향과 맛을 최종적으로 조절하는 단계인 셈입니다. 메이커에 따라서는 한 번 더 증류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초심자들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아니스 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입니다.

3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무색투명한 압생트는 희다는 의미의 블랑쉬(blanche)” 혹은 푸른 색이란 의미의 라블뢰(La bleue)”라고 불립니다. 종종 이 상태로 상품화되어 팔리기도 하는데 이건 최종 착색착향과정 없이 증류만으로 완성된 맛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2의 과정을 거쳐 막 증류된 압생트는 74%입니다. 따라서 압생트 블랑쉬의 도수는 일반적으로 74%입니다. (종종 50%전후의 블랑쉬도 있지만 이 경우는 착색 없이 맛과 향의 조절을 받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블랑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일단 블랑쉬라고 나오는 압생트의 경우엔 대부분 괜춘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흰 압생트의 최고봉, 블랑쉬 드 푸제로예

3의 과정을 거쳐 초록색으로 착색된 일반적인 압생트는 (당연하게도) 초록이란 의미의 베르트(Verte)”라고 불립니다. 식물이 초록색인 이유와 마찬가지로 압생트의 녹색 역시 엽록소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 빛에 노출 될수록 엽록소가 분해되어 고유의 녹색은 점점 황갈색으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데 이것은 좋은 압생트가 가진 매력 중 하나입니다.

 

3단계를 거치면서 알코올함유는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정통 제조법으로 만든 압생트 베르트는 68%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만 지역이나 양조장의 취향에 따라 더 줄어들기도 합니다. 

 

 

미국 주조업계의 장인인 랜스 윈터스가 만들어낸 뛰어난 미국식 압생트 세인트조지(생조르쥬가 아니라)
좋은 베르트는 태양 빛에의해 점점 갈색으로 변해간다.

 

애욕의 붉은 압생트, 압생트 루쥐, 붉은 빛은 히비스커스 꽃잎으로 착색했기 때문이다.

인공착색을 하지 않는 안되는 압생트 루쥐 하나인 스페인산 세르피스.

마주를 경배하라, 압생티아나.

압생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음주시에 벌어지는 압생티아나라고 불리는 좀 유별난 의식입니다.
의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에릭 리튼 촬영


1. 정량이 표시된 전용 잔의 일정 부분까지 압생트를 따릅니다.

2. 잔 위에 바닥에 구멍이 송송 뜷려있는 전용 스푼을 걸쳐놓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립니다.

3. 차가운 물을 서 너 방울 떨어뜨려 각설탕에 스미게 한다. 각설탕이 천천히 녹아 스푼의 구멍을 통해 압생트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4. 설탕이 거의 다 녹아 떨어질 무렵에 남아 있는 설탕을 씻어내듯이 찬 물을 서서히 가는 물줄기로 따른다. 투명한 녹색이던 액체가 차가운 물과 반응해서 탁한 젖빛의 흰 액체로 변합니다. 완성.


차가운 물 때문에 알코올에 녹아있던 기름 성분(주로 아니스의 향)이 분리가 되어 에멀젼화되는 이 마술 같은 현상은 그리스의 민속주 우조에서 나타난다고 해서 우조효과라 불리는데 우조뿐 아니라 아니스가 들어가 있는 파스티스나 터키 민속주 라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이 압생트에서 벌어질 때는 특별히 루쉬(louche, 불어로 그늘지다’, ‘수상하다’, ‘흐리다라는 의미)”라고 하죠. 이 현상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주는 것 외에도 압생트 안에 잠들어 있는 여러가지 허브의 복잡한 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좋은 압생트는 물의 첨가량에 따라 활성화되는 향의 층이 다르다고 할까요.. 같은 원액이라도 물의 첨가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루쉬는 압생트의 질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름성분이 에멀젼화되기 때문에 입에 약간 걸쭉한 점성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무슨 요거트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브랜드에 따라서 (정확히는 아니스의 함유량에 따라서) 밀키스 정도에서 우유, 심한 경우엔 물 탄 밀크쉐이크 같은 질감까지도 느껴집니다.

이 섬세하고 정교한 맛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압생티아나에서 각설탕을 빼거나 적게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탕을 멀리하는 압생트 애호가들은 설탕이란 모름지기 예전 가격경쟁을 하던 시절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진 싼 압생트의 좋지 않은 맛을 가리기 위해 업자들이 개발한 일종의 속임수이므로 좋은 압생트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사실 오리지널 메이커인 페르노나 페르노 보다 비싼 명품 압생트로 팔린 퀴제니에 등의 광고전단을 보면 전부 설탕과 함께 먹을 것을 권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19세기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 단 것을 더 좋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통인지 고증이라는 차원에서 따진다면 결국 설탕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이야기지만 음주가 무슨 역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맛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에 의해 결정되는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설탕이 들어갈 경우 훨씬 여유 있게 향들을 하나하나 입안에서 분리해 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감상이었고 (전반적으로 발란스가 느껴짐) 설탕이 없을 때는 아니스와 페넬의 원투 펀치가 강하게 느껴지는 마조키스트적 쾌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넣기도하고 안 넣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블랑쉬나 스페인산 압생트에는 설탕을 넣어 먹지 않습니다.)


 

시대의 총아에서 탕아로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쉽게 말해 풀 뜯어 담근 술입니다. 딱히 해로운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 녀석이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금지가 되었을까요? 

 

 녹색요정에 취한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절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중독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부어라마셔라 해댔으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기성세대들은 이런 아름다운 시절에 대해 꼴사납게 생각했죠. 예술 한답시고 술에 취해서 해롱대는 백수들, 바 한 쪽에서 서로의 하의 속에 손을 집어넣고 조물락거리는 술취한 남녀들, 거리에는 술을 못 이겨 대낮부터 자기의 토사물 속에 처박혀있는 사람들, 정신병원을 가득 메운 수전증부터 환각에 정신분열까지 골고루 가지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이런 말세 같은 작태를 보면서 당시 프랑스의 식자층들은 개탄을 금치 못했고 종교단체인 청십자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금주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주타겟은 바로 프랑스인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압생트였습니다.

 압생트가 주 타겟이 되어버린 건 가장 인기 있는 술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뒤에는 금주운동을 피해보려는 프랑스 와인업자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엽에 와서야 겨우 병충해대란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프랑스 와인업계는 갑자기 벌어진 금주운동이라는 또 다른 폭탄을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금주운동이 종교단체 주도로 진행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와인은 성서에도 나오는 거룩한 술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포화를 피해갑니다. “최후에 만찬에 사용된 바로 그 명품음료”, “지저스 크라이스트도 인정한 보혈음료라는 식으로 와인은 땅과 하늘, 즉 자연이 시간을 들여 탄생시킨 건강음료지만 불길한 색깔의 압생트는 공장에서 장사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옥의 국물이라는 식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펼칩니다. 또 당시는 프랑스 전체가 진보와 수구꼴통으로 갈라져 싸운 드레퓌스 무고사건(1894~1906) 덕분에 카톨릭교계의 유태인에 대한 감정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압생트의 최초생산자인 페르노가 유태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교회로서는 압생트를 공격할만한 더 큰 명분이 있는 셈이었죠.

 

그들에게 대중을 설득할 과학적 근거를 처음 제공한 것은 발렝땡 마냥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1860년대부터 진행해 오던 실험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을 경영하던 마냥박사는 압생트에 해롱거리는 사람들의 꼴이 보기 싫어 이거 분명히 해롭다, 다른 술보다 엑스트라로 해로와라는 심증을 정하고 압생트의 유해성분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결과를 마음 속에 정해 놓고 하는 실험은 실험이 아니라 기원이고, 과학이 아니라 종교잖습니까?

이 분께서 하신 실험이 이런 식입니다. 압생트라는 술 자체가 아니라 압생트라는 술에 들어있는 압생트라는 풀(쓴 쑥)의 농축액을 생쥐에게 노출시킵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생쥐들이 파르르 발작을 일으키며 죽기 시작합니다. ‘유레카! 역시 압생트(쓴 쑥)는 과다 복용하면 발작을 일으키면서 사망하는 군! QED! 따라서 압생트()은 다른 술에 비해 발작과 사망을 일으킨다. 그런데 압생트 때문에 입원한 환자들을 보니까 환각에 시달린다던데 여기에 환각을 추가해 3종세트로 구성해보자.’라는 식으로 자기가 이미 세워 놓은 결론을 확인한(?) 마냥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압생트()병을 가리키면서 뇌까렸습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19세기 말엽에 왈락이라는 화학자에 의해 쓴 쑥 안에 함유된 투존(thujone)이란 성분이 발견되면서 이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얻어갑니다. “압생트 안에는 투존이란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게 환각과 마비와 발작을 일으킨다더라.”라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압생트, 그것은 죽음! 이라는 끔찍한 내용의 포스터

 마냥박사는 환각, 발작 외에도 불면증, 충동장애, 분노 등 온갖 부작용들을 한데 묶어 압생티즘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런 부작용들에 대해 사람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실제 압생트를 음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런 오버질에 대해 코웃음을 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먹으면 발작하며 죽는다는데, 오오 비장한 걸, 한 잔 더.” 혹은 먹으면 환각이 보인다는데, 오오 녹색 요정이여 어서 강림하시오, 벤투라 벤투라 스페이스한 잔 더이러면서 더욱 마셔댔습니다. 아마도 도덕주의자들이 붙인 죽음의 술이라는 딱지는 보헤미안들에겐 오히려 타나토스적인 낭만이라는 매력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했습니다. (연적을 깨고 꿀단지를 비운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처럼 이 맛있는 거 먹으면 죽는다는 협박은 절대 안 통하는 법입니다.)

 

그러던 와중, 1905년 더운 여름날 스위스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압생트금지를 주장하는 쪽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고 여론을 돌리는 기폭제가 됩니다.  

 

 쟝 랑프레라는 서른 한 살의 농부는 부인과의 말다툼 끝에 자기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베테리제 라이플로 자신의 부인과 두 아이 (카톨릭의 입장에선 세 아이)를 쏴 죽여버립니다. 말다툼하던 부인의 머리에 한 발, 총성에 놀래서 뛰어 들어온 네 살 짜리 큰 딸의 가슴에 한 발, 그리고 요람에서 자고 있던 한 살 짜리 둘 째 딸의 몸통에 한 발,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자살하려다가 그만 턱에 총알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면서 술에 취해 잠이 들어버리는데 이 후 부인의 시신을 부검해보니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체포되고 나서야 술에 깨어난 후 자신이 무참히 쏘아 죽인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보고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스위스의 조그만 마을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습니다. 충격을 받은 마을사람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허공에 던지기 시작했고 몇 일 후 마을회의에서 그 착하고 선량하던 쟝을 살인마로 만든 범인은 바로 그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라고 결론 지어버립니다.

압생트를 쏘아버린 바로 그 총

당시 유럽인들은 무절제하게 술을 마셔댔고 게다가 식민지 전쟁덕분에 총이 흔해져서 술김에 가족들을 쏴 죽이는 일이 꽤나 빈번한 편이었는데 랑프레 사건은 마을 사람들이 내린 압생트가 범인이요라는 황당한 결론 때문에 와인업자와 종교단체의 힘을 얻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게 됩니다.


 

압생트 때문에 돌아버린 게 정말인지 사건이 있던 날 랑프레이의 음주일지를 살펴 봅시다. 

 

1. 아침에 일어나 쌉싸름한 압생트 두 잔 (당연히 물 타서)

2. 오전 5:30 일터인 포도원으로 나가는 도중, 동네 술집에 들러 크렘데멘테라는 리큐르와 물을 섞어 한잔, 그리고 꼬냑과 탄산수를 섞어서 또 한잔

3. 오후 12:00 점심시간에 빵, 치즈, 소시지와 함께 집에서 직접 담근 와인 석 잔

4. 오후 3:00, 일하다 말고 잠시 휴식, 휴식 중에 와인 두 잔

5. 오후 4:15 일하는 도중 한잔 하고 하라는 동네 주민의 권유에 와인 한 잔

6. 오후 4:30 일 끝나고 카페에 들러 커피에 브랜디를 타서 한 잔

7. 오후 5:00 와이프 보고 커피 한잔 달라고 하더니 커피에 집에서 직접 만든 독한 브랜디를 넣고 한잔. 커피가 안 따듯하다고 와이프한테 성질


잔으로 쓰니까 감이 안 올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쟝은 하루에 2리터가넘는 보통 와인과 동네에서도 최고로 강한 것으로 유명했던 홈메이드 와인을 역시 2리터 넘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4~5리터 와인과 리큐르 그리고 브랜디 종류 이렇게 매일 드시는 거였다는 이야기죠. 문제가 된 압생트는 고작 아침에 한 두잔 정도

 

상식적으로 압생트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냐는 거죠. 술을 저 정도 매일 마셔댔다면 어느 순간에 돌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앞 뒤 다 무시하고 아침에 먹은 압생트 두 잔이 바로 살인의 원흉이라는 식으로 언론들은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압생트 제조업자들도 아뿔싸 하면서 PR을 전개 했는데 이미 게임오버. 산소가 함유된 압생트, 위생적인 공정을 거친 압생트, 심지어는 유해성분이라고 알려진 투존이 빠진 압생트 등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아 이 사람들아 원래는 약으로 개발된 거임이라고 외쳐보기도 했지만 이미 여론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드레퓌스 사건 때는 드레퓌스를 옹호하던 진보언론까지도 압생트의 유해와 판매금지를 주창하고 나섰으니 어느 새 유럽은 압생트 반대를 통해 이념통합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1906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1908년 네덜란드 그리고 1910년에는 스위스, 1912년에는 미국, 마침내 1915년에는 종주국 프랑스도 압생트 판매금지를 실시합니다. 이렇게 한 세기를 풍미했던 압생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오명을 한아름 안은 채 쓸쓸히 사라지게 됩니다.

 

악착스러운 종교단체의 활동은 압생트의 종말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여론몰이의 결과였다.

1910년 스위스의 압생트 판금에 맞춰 스위스의 풍자교양지인 "르귀귀스에 실린 이 포스터는 압생트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청십자를 성직자의 옷을 입은 악마로 묘사하고 있다.

 

르귀귀스의 포스터를 변형한 듯 보이는 1915년의 이 포스터는 프랑스의 압생트 금지를 다루고 있다.
가운데는 커다랗데 프랑스 만세라고 쓰여져있고 청십자 신부 대신 당시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인 푸앙카레가 당당히 서있다.


 

 좀 더 진지한 다른 포스터. 프랑스의 국민들이 녹색 요정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고
천국에선 5년 전 먼저 간 스위스의 초록요정이 기다리고 있다.

 

본 글은 http://lanugo.egloos.com/2267554의 액화철인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