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말한다§

압생트 - 가짜와 불량품에 주의하세요.

합격한사람 2011. 7. 31. 15:10

가짜압생트 구별법 - 고흐얼굴 들어간 것치고 진짜 압생트 없다?

1.       일단 이름이 absinth면 무조건 가짜. 사실 absinth는 스펠링 오류는 아닙니다. 체코는 원래 그렇게 표기하니까요. 그런데 체코에서 생산되던 것들 중의 대부분이 보헤미안이기 때문에 absinth는 가짜 압생트, 혹은 보헤미안 압생트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2.       첫번째와 연결됩니다. 일단 체코에서 생산된 건 무조건 의심하세요. 체코 브랜드 중 정통 압생트는 제가 알고 있는 건 올리바라는 브랜드와 생안트완이라는 브랜드 두 종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가짜.

 

3.       색이 청록색이면 무조건 가짜. 사실 이 부분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헤미안 압생트는 란도밀 힐이 만들어 놓은 컬러를 모방했기 때문에 전부 청록색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벨에포크시대에 생산되던 전통 압생트 중에서도 청록색인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천연재료로 착색한 것이 아니니까 등급이 낮은 제품이었겠죠. 어쨌든 둘 다 인공착색이고 좋지 않습니다.

 

4.       보헤미안의 특징은 루쉬가 안 일어나거나 약합니다. 아니스가 안 들어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조금씩 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살짝 일어나기도 합니다.

 

5.       투존이 많이 들어있다고 주장하는 압생트는 가짜입니다. 투존과 환각작용이 크게 상관 없다는 것과 압생트는 환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장사꾼이 만들어 낸 술입니다.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죠. 투존이 많이 들어간 건 아마도 증류가 아니라 쓴쑥 엑기스를 그냥 알코올에 섞었기 때문일 겁니다. 투존 많이 먹으면 발작을 일으키며 죽습니다. 환각은 못보고 말이죠.

 

6.       안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면 그건 가짜이거나 성의 없이 만든 제품입니다. 위에도 사진으로 소개된 킹 오브 스피리츠 골드같은 경우는 천연재료를 쓴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밑에 일부러 넣어 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짜의 경우는 과시가 많습니다.

 

7.       과시라고 하니까 한 가지 더! 녹색 압생트인데 병이 투명하면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천연재료로 착색된 압생트는 빛을 받으면 엽록소가 파괴되어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와인처럼 색이 짙은 병에 넣어 판매됩니다. 그러나 보헤미안은 스스로가 퍼렇다는 걸 과시해야 하니까 투명한 병에 담겨 판매됩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세인트 조지나 베르테 푸제로예 등 몇몇 브랜드는 정통 녹색 압생트이지만 투명한 병에 담겨 있습니다. 이건 천연 압생트는 변색조차 매력이라는 독특한 제품철학의 반영입니다.

 

8.       알코올 함유가 80를 넘어가면 대부분 가짜입니다. 정통 압생트는 블랑쉬로 74%에서 증류됩니다. 착색작업에 의해 이거보다 밑으로 내려 갈 수는 있어도 올라가려면 수상한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다만, 75%인 로켓1797(오르디네르 선생의 명마의 이름을 딴)은 현대 프랑스 압생트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에밀 페르노가 소량생산으로 18세기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그러니까 한마디로 압생트가 메이저 데뷔하기 이전 방식을 재현한 명품입니다.

 

강호의 도는 땅에 떨어져 무림은 어지러워지고

 법률에 의해 철저하게 품질관리가 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프랑스의 와인이나 스코틀란드의 위스키처럼 벨에포크의 압생트에도 엄격한 품질 등급이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등급부터 높은 등급까지 오르디네르(ordinaire), 데미핀(demi-fine), (fine), 쉬페리외르(supérieure), 스위스(Suisse)의 다섯 가지 등급으로 쉬페리외르 이상의 두 등급은 반드시 천연재료로 착색착향되어야만 했고 반드시 허브를 빻아 넣은 후 증류시키는 오리지널 레시피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금지와 함께 사라져버리게 되었죠.

 금지품의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는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법이 지켜주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별 짓을 다하는 데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압생트의 판매금지 이후 사람들은 악마의 음료 전설을 쫓아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어 내고 압생트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진짜 압생트가 복권되기 전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이들이 현대 압생트의 선발주자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 되어버려 현재 시장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브랜드가 되어버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 번 회 실전편에선 먼저 가짜 압생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압생트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이 현재 한국에도 들어오고 있는 이런 가짜에 속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보헤미안 압생트 전설
(
부제: 가짜가 살아남는 법,
 또 다른 부제: e자가 없다면 의심하세요
 또 다른 부제: 체코에선 압생트를 사지마세요)

1915년 압생트가 금지되자, 페르노 문제가 되는 쓴쑥을 뺀 레시피로 만들어진 술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그게 바로 아직도 팔리고 있는 페르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파스티스입니다. 맛은 압생트와 거의 비슷하고 아니스가 들어 있기 때문에 물을 부으면 루쉬처럼 허옇게 변합니다. 사실 파스티스는 가짜 압생트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불법이 된 압생트의 대체품이었죠. 파스티쉬(pastiche 모조)에서 따온 이름 자체도 진짜에 대한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가짜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정직한 모방품, 판금을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아닙니다. 이건 아예 스스로가 압생트라고 주장하는 거짓 압생트(비록 스펠링은 absinthe가 아니라 absinth지만)이야기입니다.

 

란도밀 힐이라는 체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체양조시설을 가지고 있는 주류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이을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체코가 공산화되어 버립니다. 다른 체코의 많은 사설 양조장과 마찬가지로 힐가문의 증류공장도 국유화 되어버리고 힐가문은 반동자본가로 낙인 찍혀 몰락의 길을 걸어야했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술을 공부하던 란도밀은 이제는 양조장의 술을 운반하는 트럭운전사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송곳은 감춰져 있어도 주머니에 구멍을 내는 법. 양조전문가라는 사실이 일터에서 드러나면서 승승장구 드디어 작업반장의 위치까지 올라섭니다. 그리고 50년이 넘게 흘러 1989년 드디어 이름처럼 부드러운 벨벳혁명을 통해 공산당의 통치가 막을 내리고 체코의 민주화가 완성됩니다.

 

청춘을 공산체제에서 보내고 이제 65세가 돼서야 란도밀은 국유화 되었던 자신의 유산, 아버지의 양조장을 국가로부터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한을 풀 듯이 열심히 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체코의 양조장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술을 증류합니다. 오늘은 보드카 내일은 과일브랜디 이런 식으로 말이죠. 란도밀 힐의 증류소도 처음엔 럼, 보드카, 코코넛맛 리큐르(말리부 짝퉁), 커피맛 리큐르(칼루아 짝퉁), 페퍼민트 리큐르 다섯가지의 술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보헤미안의 영감이 찾아왔는지 란도밀 힐은 압생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체코는 다른 동유럽과 마찬가지로 벨에포크 시절에도 압생트가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 아니어서 당연히 금지 어쩌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던 곳입니다. 따라서 압생트가 금지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힐의 압생트 생산은 합법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 금지된 술은 수많은 억측과 전설을 안고 있었습니다. 악마의 술, 마약, 광기의 음료, 를 미치게 한 술 등 압생트를 둘러싼 근거 없이 부풀려진 이야기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란도밀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 힐의 압생트는 체코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어서) 한 번도 압생트가 금지된 적이 없던 영국에 소개됩니다. 역시 체코와 마찬가지로 술 자체 보다는 그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전설 덕분에 압생트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란도밀 힐은 압생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 점입니다. 압생트의 빛깔과 쑥이 들어간다는 것 허브의 상콤한 맛이 난다는 것, 설탕을 타 먹는다는 것 정도만 안 상태에서 어디 한 번 만들어 볼까라는 기세로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힐의 압생트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힐이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지만 결과물은 확실히 예전의 압생트와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식용색소를 사용한 청록색 빛깔과 강한 민트향은 란도밀이 증류소 초창기에 만들었던 페퍼민트를 떠올리게 하면 다행이고 사실은 가그린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게 가짜라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드는 법도 맛도 잊고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쓴 쑥이 들어간 채로 최대한 기괴하고 음험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진 란도밀 판 압생트가 시장에 나왔고 이거 뭐 팔리겠어?”라고 생각했던 힐이 예상과는 달리 체코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발명자라 할 수 있는 란도밀 힐은 심지어 유럽판 타임지에까지 실리게 됩니다. 그러자 다른 양조장들도 압생트를 생산하기 시작했죠. 그들이 모델로 사용한 건 바로 힐의 될대로 되라압생트, 이름하여 보헤미안 압생트였습니다. 보헤미안 압생트는 실제 정통 압생트와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조지 로울리라는 영국인 사업가가 프라하에 들어와 있다가 체코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는 영국에 가져가면 막나가는 청춘들에게 인기 좀 있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돈 냄새를 맡은 거죠. 그리고 BHH라는 회사를 설립 힐의 압생트를 수입해서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압생트를 팔기 위해 로울리가 한 여러가지 마케팅 활동은 코카콜라가 산타클로스에게 빨간 옷을 입혔던 것만큼이나 약발이 쎈 것이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압생트의 유해성에 관한 이야기들, 마약으로서의 효과, 그리고 함유물질인 투존의 향정신성에 대한 이야기, 벨에포크의 예술가들의 기행들에 관한 이야기 한 마디로 제가 지난 번 포스팅들에서 다뤘던 그 모든 오해들을 현대에 다시 부활 시킨 것이 바로 조지 로울리였습니다. 로울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압생트에 악마의 술이라는 누명을 씌웁니다. 한마디로 압생트를 폐지시키기 위해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 했던 똑 같은 짓을 이 번에는 압생트를 많이 팔기 위해 반복한 셈입니다. 이 마케팅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잘못된 압생트관()을 마치 사실인 양 고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미술사 교수님들의 강의나 대중매체에서 이야기하는 압생트의 모습은 바로 이 때의 마케팅의 영향이 큽니다. 잊혀졌던 사실보다 잊혀졌던 거짓이 먼저 깨어나 사실의 자리를 꿰 찬 셈이죠.


이것이 가짜 압생트? 보헤미안 압생트를 촉발시킨 바로 그 브랜드.

빛깔도 구강청정제, 냄새도 구강청정제, 그럼 맛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주로 수입하니까)


 

보헤미안 압생트를 둘러 싼 거짓말들 (란도밀 힐의 변명)

힐의 압생트는 1920년대부터 내려오는 힐가문 전래의 비법으로 만들어졌다. 2차 대전 때 나치의 눈을 피해 몰래 만들어졌었는데 도수가 높아서 물 만 타면 한 병으로도 오래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것이 공산화가 되면서 금지되었고 결국 민주화 이후 옛날 힐 가문의 압생트를 기억하는 노인 하나가 마구 먹고 싶다고 졸라대서 란도밀은 기억을 더듬어 만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1990년대 이전에 체코에 압생트가 존재했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사진도, 숨겨놓은 병도, 라벨도, 기사도, 신문광고도 아무 것도 없이 단순히 힐의 홍보자료에만 존재하는 체코 압생트의 역사만이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이야기도 가만히 보면 많이 우스운 게 탄압의 역사라는 모티브를 어디서 주어와서 괜히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느낌도 들고, 스카치 위스키도 아닌데 말이죠.  2차 대전의 역사를 연구하는 체코의 역사가들도 나치가 특별히 체코의 압생트를 금지시켰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소설을 쓴 거라고 볼 수 있죠.

보헤미안 압생트의 인기에 기가 막혔던 건 압생트 역사가들과 숨어서 암암리에 압생트를 즐기던 애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헤미안 압생트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기 시작하자 다음과 같은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지금의 법규로는 예전과 같은 압생트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신만큼은 이어 받고 있다

힐이 같은 압생트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법이 금지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압생트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압생트()의 가장 특징 적인 요소는 이름이 유래된 앱생트(쓴쑥)이 아닙니다. 바로 아니스죠.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아니스입니다. 보헤미안 압생트에는 아니스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었습니다. 압생트니까 쑥만 넣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한데 말이죠 이 문제에 대한 힐의 답변이 걸작입니다.

 

원래 우리집안의 술은 싸나이가 마시는 압생트다. 싸나이가 마시는 술이 캔디처럼 달콤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뺐다.” (후일 힐은 레시피에 아니스를 스리슬쩍 조금 추가하는 초싸나이다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니스가 안 들어있어서 싸나이다운 맛이 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덕분에 압생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을 부으면 희게 변하는 루쉬가 안 일어나는 겁니다. 이에 체코의 압생트 업자들은 보헤미안 압생티아나라는 걸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도 역시 예부터 체코슬로바키아 지방에서는…”이라는 식의 전설이 따라 붙습니다만 사실 예전에 정통 보헤미안 압생트라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이 것도 거짓말일 공산이 크지요. 이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각설탕을 압생트에 적신 후, 불을 붙입니다. (70%니까 붙죠)

2.       설탕이 불에 녹기 시작하면 압생트에 떨어뜨린 후 젓습니다.

3.       압생트 양만큼의 물을 부어 꺼트립니다.

4.       마십니다.

 설탕 놓고 그냥 물만 붓는 정통 압생티아나 보다 재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일단 불장난은 모든 남자아이들의 로망이고 남자는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지 애가 되든지 하지 하니까 말이죠. 8~90년대에 유럽의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삼부카 역시 불 붙여 마시는 의식으로 유명해졌었죠. 아마도 이런 불장난의 요소는 삼부카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오리지널 보다 훨씬 흥미롭고 스펙타클한 이 의식은 금방 대중문화의 관심을 받게 되고  조니뎁 주연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살인극 프롬헬에서 사용됩니다. 나름 이것도 사극이라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압생트는 불을 붙여 먹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 술에 불을 붙여먹든, 라면국물을 부어 마시든 자유겠지만 제대로 된 압생트에 불을 붙이면 복잡한 향과 맛이 불타는 알코올과 함께 날아가 버려 맛이 심하게 망가지는 건 사실입니다.(그렇다고 삼부카 처럼 태운 향을 빨대로 흡입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보헤미안 압생트는 신경 쓸 필요 없겠죠. 망가질 맛도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프롬헬의 한 장면. 악마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소재겠지만

실제 압생트는 저런 식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다.

보헤미안 압생트 업계가 한 거짓말 중 가장 악질적인 건 바로 먹으면 뿅감이었습니다. 이거짓말은 굉장히 다양한 방향으로 파장을 만들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실제 마약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광고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에 단속 들어가니까) 각종 프로모션과 입소문생성을 통해 먹으면 우주를 느낄 수 있음(마약대체품)”, “여자들이 먹으면 당장 홀딱 벗음(돼지발정제대체품)”이라는 식의 제품 루머를 계속 만들어 냅니다. 맛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 술은 맛으로 먹는 술이 아니라 맛이 가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는 식으로 주장한 거죠. 이 거짓말이 여기서 끝났더라면 좋은데 이 거짓말을 입증하기 위해 뒤에서 벌어진 짓들은 상식 밖의 것들입니다. 압생트의 향정신성 효과는 투존에 의한 것이라는 잘못된 상식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더 많은 투존 함유, 고로 쉽게 감이란 식으로 제품생산 및 마케팅을 하기도 했고 일부 업체는 제품 내에 근육이완제를 쓰기도 한다는 루머까지 있습니다. 가그린과 순수 에탄올을 1:2로 섞은 맛을 내는 이 물건이 이제는 몸에 해롭기까지 한 지경에 이른 거죠.

 

보헤미안 압생트는 왜 가짜인가?

테네시 위스키는 가짜 위스키 입니까? 그렇지 않죠. 싱글몰트와는 만드는 재료나 방식이 틀리지만 테네시 위스키는 위스키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보헤미안 압생트도 또 다른 압생트의 방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라고 현재 보헤미안 압생트 생산 업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견 그럴 듯 해 보이는 이야긴데 문제는 이겁니다. 보헤미안 압생트가 고흐나 로트렉, 랭보와 베를렝 같은 전혀 자기 제품과 상관 없는 벨에포크적인 상징과 인물들을 계속 쓰려고 한다는 거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압생트의 요건인 아니스, 페넬, 쓴쑥이라는 재료의 기본요건을 지키지 않으면서 압생트의 역사적 명성에만 무임승차하겠다는 겁니다. 테네시 위스키는 언제나 테네시 위스키라는 이름으로 팔리지 싱글몰트인 척 하지는 않습니다.

가짜 일수록 역사에 집착한다.

라벨에 고흐가 나와있다고 속지 말라! 게다가 밑에는 수상한 건더기까지 가라앉아있다.


차라리 이 제품, absente는 스스로 압생트가 아니라고 정직하게 주장한다.

홈페이지에도 나왔다. “우리제품은 압생트가 아닙니다라고

(압생트를 정제했다라는 밑의 문구에 주목하라. 정제라기 보다는 중요 재료를 교체했다.

즉 파스티스하고 같은 거란 의미)

일단 패키지 고흐 얼굴이 들어간 것 치고 진짜 압생트는 없다

 

이런 점이 보헤미안 압생트가 과연 테네시 위스키처럼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언제나 자기 것이 아닌 전통과 날조된 전설에 의존하는 이상 보헤미안 압생트는 가짜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최근에는 보헤미안 압생트에도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예전엔 1920년부터 내려오던 전통 어쩌구 하더니 이제는 그래도 시장에서 5년 이상 버텼는데 최소한 ‘5년 전통은 되는 것 아니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로 특이한 칵테일 재료로서 자리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긴 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헤미안 압생트가 우리가 예전에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다가 금지된 그 압생트, 우리가 로트렉의 압생트, 랭보의 압생트라고 부르던 그 압생트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