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들은 어떤 언어의 구조나 그 언어가 갖고 있는 심리적, 문화적 속성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기법, 행동 양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아랍인들은 사실보다는 관념에, 관념보다는 말에 더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는 지적과
"세계 어느 민족도 아랍인들 만큼 말이든 글이든 자신들의 언어에 감동하고 문학적 표현에 열광하는 민족은 없으며, 또한 아랍어 만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는 견해는 아랍인과 아랍어의 관계를 적절히 잘 설명해준다. 아랍인들에게,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청자를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매혹시킬 수 있는 속성을 지닌 '합법적' 주문인 것이다. 본 장에서는 문어체 아랍어에 내재된 언어
및 심리적 속성이 아랍인들의 의사 소통의 심층 구조를 형성하는 정서 패턴과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 아랍어에 내재된 언어적인 속성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아랍어의 보수성
아랍어의 언어적 보수성이라함은, 언어 사용자가 구어체 아랍어보다 문어체 아랍어를 존중하는 성향을 뜻하며 나아가 문어체와 구어체 아랍어의 '양층언어 현상'이 존속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문어체 아랍어가 이슬람 전파 이전 자힐리야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1300년 남짓 그 형태를 온전히 보전하여 온 점에 유의하여 문어체 아랍어 자체에 내재하는 보수성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첫째, 구어(spoken language)에 비해 문어(written language)가 보편적으로 갖는 언어의 구조적 경직성이다. 즉, 문어에는 보다 규범적인 문법 규칙이 있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통용되는 반면, 구어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변천하며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문어체 아랍어의 정밀하고 까다로운 문법 규칙을 엄격히 지키려고 할 경우, 작자나 화자의 사고의 폭은 이에 의해 제한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안정된 언어와 문법의 학습을 통해 얻는 편의성이나 만족감, 단어의 이미지로부터 나오는 매력, 단어의 특정 어형에서 나오는 음악성 등 때문에 아랍인들이 문어체 아랍어를 선호케 되는 것이다. 둘째, 종교와 관련된 아랍어의 보수성이다. 아랍어에서는 위엄내지 종교적인 경건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아랍어가 신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선정된 전달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유일신 알라(Allah)의 계시를 아랍어로 집대성한 것으로서 무슬림들은 꾸란 자체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성시하여 절대적 진리로 귀중히 여긴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꾸란이 어떠한 인간의 언어로도 번역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영적인 관념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반드시 아랍어로 된 원어의 꾸란을 읽고 이해하도록 되어있다. 아랍어가 아닌 외국어로 번역된 꾸란은 이미 성전(聖典)이 아닌 속서이며 극히 초보적인 주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의 예배 의식도 반드시 아랍어로만 진행하도록 되어있어 이슬람의 유일한 전례어가 된다. 셋째, 아랍어와 아랍의 과거 영광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1965년 아랍국가 지도자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랍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누구이든, 아랍어를 말하고, 우리 조상땅에 살며, 우리들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는 모두 우리 아랍의 일원이다." 또 영국의 아랍학자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는 그의 저서{아랍의 역사}에서 해밀톤 깁(Hamilton Gibb: 영국의 아랍·이슬람학자)의 아랍에 대한 정의 "역사의 핵심은 무함마드의 전도 및 아랍 제국의 영광에 대한 추억을 가지며 아랍어와 그 언어에 의한 문화 유산을 아랍 공동의 것으로 여기는 자가 아랍이다"를 인용하고 있다. 이같은 두 견해는 모두 아랍인 정의의 공통 분모로서 과거의 전통과 영광을 불가결의 요소로 보고있다. 아랍인은 지나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그 역사의 화려한 면을 회고하여 낭만적인 추억속에 빠진다. 그래서 아랍인이라면, 문어체 아랍어를 이슬람의 기치하에 찬란한 역사를 창조했던 선조들의 언어로 간주하여, 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영광과 명예로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근대 아랍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아랍어인 점이다. 아랍인들의 범 아랍주의(Pan- Arabism)에 대한 각성은 아랍어라는 유일하고도 공통적인 사고매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 표준성이 지역이나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민족 공동체(Umma)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랍인들은 문어체 아랍어로 쓰여진 그들의 문학 산물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문어체 아랍어를 마땅히 존중하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문어체 아랍어를 변화시키려한다면 이는 아랍인들로부터 문화적 속성을 박탈하는 것이 된다. 또한 아랍어의 언어적 아름다움은 음의 공명이나 운율, 동음이의의 익살에 좌우되는데 아랍어를 다른 언어로 옮길 경우 정교하게 조작된 음을 살리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이유 등 때문에 문어체 아랍어는 아랍 문학의 유산을 보존, 계승하려는 아랍인들의 애호를 받게 된다.
●아랍어의 모호성
말에 모호성(ambiguity)이 있다는 것은 자연 언어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랍어로 표현된 사고가 대체로 애매 모호하고 딱 꼬집어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아랍인들의 의사 소통에서 모호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즉 근대로 접어들면서 아랍 세계에 서구 문물이 급격히 유입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는데 외래어를 차용하거나 신조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어(古語)를 고집스럽게 채택함으로써 단어와 문장에서 풍기는 의미론적 모호성인 것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아랍어의 보수성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사고가 애매해진 최대의 원인은 현대 아랍어의 어휘수가 너무 많고, 그리고 동질적이면서도 고정화된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말의 관용구적인 형식과 문법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단순히 단어수가 많은 포괄적인 문장을 써도 괜찮다는 것이 된다.
●시제의 모호성
세분화된 시제를 갖고 있는 유럽어들이 시간 개념이 발달되어 있는데 비해 아랍어는 시제가 구체적으로 세분되어 있지 않고 기본 시제가 완료와 미완료 둘 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 전달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 두가지, 또는 세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정확한 전달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아랍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적당한 시간 부사의 도움없이는 시제가 모호해진다.완료 시제도 과거에 물을 마신 것인지 지금 막 물 마시기를 끝마친 현재 완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처럼 시제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시제가 세분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발음상의 모호성
이것은 어휘나 구, 문장이 같은 소리로 나면서 한가지 이상의 뜻을 갖는 경우이다. 아랍인들은 말 그 자체를 강조하고 의미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동음이의의 익살(pun)을 부리기를 좋아한다. 이 동음이의의 익살이 모든 유머나 해학적인 담화속에 곧잘 나타난다.
●아랍어의 감정 지향성
아랍인들은 의사 소통과정에서 감정을 격렬히 발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아랍인들은 화난 몸짓과 큰 소리를 내어서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는데, 이것을 듣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마치 '긴박한'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적의까지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편에서는 이미 불쾌해졌을지 모르지만 아랍인들은 외국인들의 조용한 태도를 보고 오히려 무반응, 무감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만다. 이러한 사태는 서로가 상대방의 언어소통 양식에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랍어의 음악적이며 선율적인 속성은 아랍어의 특이한 언어 구조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 수많은 어형의 변화와 모음과 자음의 변화, 의미에 따른 억양의 강세가 아랍어의 음악성을이루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아랍어 동사의 완료 시제 변화와 미완료 시제 변화는 인칭, 성, 수에 따른 어미 변화로써 나타낸다. 아랍어는 액센트나 강세 보다는 음절 길이가 중요시되는 언어이다. 소리내어 읽을 때는 모든 음절을 그 길이 만큼 뚜렷하게 발음해야 한다. 어떤 음절이 다른 음절보다 강세가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이는 음절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음운 규칙상 연속적으로 자음 둘 이상이 이어질 수 없으므로, 자음과 모음의 변화가 음악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 지향성은 아랍 시나 산문, 특히 꾸란 낭송시 확연히 드러난다. 아랍의 전통적 시가는 각운과 운율을 갖고 있으므로 낭송시에는 거기에 따른 음악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상에서 아랍어의 구조적 음악성을 살펴보았는데 아랍어를 읽고 말한다는 단순한 행위에도 갖가지 음조의 변화를 수반하며, 이것은 아랍인들의 생리적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화자의 즉흥적인 감정 상태는 즉시 청자에게 이입되어 시 낭송 모임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대중 연설회에서 청중들은 고조된 분위기에 감탄사나 구호를 외치며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아랍어의 구조적인 음악성과 이에 따른 생리적 감정의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현상을 간파할 수 있다. 첫째, 아랍어의 음적인 아름다움과 단어의 조합에서 생겨나는 하모니와 리듬은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의미보다 낱말의 형태가 더 중요시되고, 발화시 낱말이 지닌 음향미학적인 효과를 더 고려할 경우, 이것이 언어적 모호성을 증대시켜 사고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결국 아랍인의 지적 작용을 저하시키게 된다. 둘째로, 아랍인의 언어 소통과정에서 대화 분위기를 비논리적 감정 교류에 몰고 감으로써 입씨름이나 알맹이 없는 논쟁을 야기케 한다.
●아랍어의 강조, 과장성
아랍인이 의사 소통과정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청중에게 강하게 인상 지우려 하기 때문에 강조(ta'kid)와 과장(mubalagha)에 흐르게 된다. 고대 아랍 시인이 시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중요하지 않은 주제들을 나열하여 서술한다든지, 또는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연설자가 명예, 과거의 영광에 대한 동경, 아랍어에 대한 긍지, 아랍 통일에 대한 염원 등의 주제를 반복함으로써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랍인은 사실보다 감정을 앞세우며 어느 유형의 의사 소통에서든지 강조와 과장을 내세움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랍어 자체에 강조와 과장을 위한 여러 언어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수식어로서 몇 개의 형용사를 나열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랍어 문체가 간결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으므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가지를 다른 말로 몇번이고 되풀이 표현하기도 하며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어휘가 쓰이기도 한다.
아랍 사회의 모든 의사 소통에서 아랍인들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조와 과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그 사람이 과장을 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간결하게만 전달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은 그 사람의 입장을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를 반대로 받아들일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랍인과의 의사 소통 과정에서는 그들의 언어심리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아랍어의 보수성
아랍어의 언어적 보수성이라함은, 언어 사용자가 구어체 아랍어보다 문어체 아랍어를 존중하는 성향을 뜻하며 나아가 문어체와 구어체 아랍어의 '양층언어 현상'이 존속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문어체 아랍어가 이슬람 전파 이전 자힐리야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1300년 남짓 그 형태를 온전히 보전하여 온 점에 유의하여 문어체 아랍어 자체에 내재하는 보수성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첫째, 구어(spoken language)에 비해 문어(written language)가 보편적으로 갖는 언어의 구조적 경직성이다. 즉, 문어에는 보다 규범적인 문법 규칙이 있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통용되는 반면, 구어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변천하며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문어체 아랍어의 정밀하고 까다로운 문법 규칙을 엄격히 지키려고 할 경우, 작자나 화자의 사고의 폭은 이에 의해 제한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안정된 언어와 문법의 학습을 통해 얻는 편의성이나 만족감, 단어의 이미지로부터 나오는 매력, 단어의 특정 어형에서 나오는 음악성 등 때문에 아랍인들이 문어체 아랍어를 선호케 되는 것이다. 둘째, 종교와 관련된 아랍어의 보수성이다. 아랍어에서는 위엄내지 종교적인 경건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아랍어가 신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선정된 전달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유일신 알라(Allah)의 계시를 아랍어로 집대성한 것으로서 무슬림들은 꾸란 자체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성시하여 절대적 진리로 귀중히 여긴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꾸란이 어떠한 인간의 언어로도 번역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영적인 관념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반드시 아랍어로 된 원어의 꾸란을 읽고 이해하도록 되어있다. 아랍어가 아닌 외국어로 번역된 꾸란은 이미 성전(聖典)이 아닌 속서이며 극히 초보적인 주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의 예배 의식도 반드시 아랍어로만 진행하도록 되어있어 이슬람의 유일한 전례어가 된다. 셋째, 아랍어와 아랍의 과거 영광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1965년 아랍국가 지도자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랍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누구이든, 아랍어를 말하고, 우리 조상땅에 살며, 우리들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는 모두 우리 아랍의 일원이다." 또 영국의 아랍학자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는 그의 저서{아랍의 역사}에서 해밀톤 깁(Hamilton Gibb: 영국의 아랍·이슬람학자)의 아랍에 대한 정의 "역사의 핵심은 무함마드의 전도 및 아랍 제국의 영광에 대한 추억을 가지며 아랍어와 그 언어에 의한 문화 유산을 아랍 공동의 것으로 여기는 자가 아랍이다"를 인용하고 있다. 이같은 두 견해는 모두 아랍인 정의의 공통 분모로서 과거의 전통과 영광을 불가결의 요소로 보고있다. 아랍인은 지나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그 역사의 화려한 면을 회고하여 낭만적인 추억속에 빠진다. 그래서 아랍인이라면, 문어체 아랍어를 이슬람의 기치하에 찬란한 역사를 창조했던 선조들의 언어로 간주하여, 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영광과 명예로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근대 아랍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아랍어인 점이다. 아랍인들의 범 아랍주의(Pan- Arabism)에 대한 각성은 아랍어라는 유일하고도 공통적인 사고매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 표준성이 지역이나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민족 공동체(Umma)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랍인들은 문어체 아랍어로 쓰여진 그들의 문학 산물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문어체 아랍어를 마땅히 존중하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문어체 아랍어를 변화시키려한다면 이는 아랍인들로부터 문화적 속성을 박탈하는 것이 된다. 또한 아랍어의 언어적 아름다움은 음의 공명이나 운율, 동음이의의 익살에 좌우되는데 아랍어를 다른 언어로 옮길 경우 정교하게 조작된 음을 살리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이유 등 때문에 문어체 아랍어는 아랍 문학의 유산을 보존, 계승하려는 아랍인들의 애호를 받게 된다.
●아랍어의 모호성
말에 모호성(ambiguity)이 있다는 것은 자연 언어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랍어로 표현된 사고가 대체로 애매 모호하고 딱 꼬집어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아랍인들의 의사 소통에서 모호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즉 근대로 접어들면서 아랍 세계에 서구 문물이 급격히 유입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는데 외래어를 차용하거나 신조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어(古語)를 고집스럽게 채택함으로써 단어와 문장에서 풍기는 의미론적 모호성인 것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아랍어의 보수성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사고가 애매해진 최대의 원인은 현대 아랍어의 어휘수가 너무 많고, 그리고 동질적이면서도 고정화된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말의 관용구적인 형식과 문법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단순히 단어수가 많은 포괄적인 문장을 써도 괜찮다는 것이 된다.
●시제의 모호성
세분화된 시제를 갖고 있는 유럽어들이 시간 개념이 발달되어 있는데 비해 아랍어는 시제가 구체적으로 세분되어 있지 않고 기본 시제가 완료와 미완료 둘 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 전달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 두가지, 또는 세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정확한 전달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아랍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적당한 시간 부사의 도움없이는 시제가 모호해진다.완료 시제도 과거에 물을 마신 것인지 지금 막 물 마시기를 끝마친 현재 완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처럼 시제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시제가 세분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발음상의 모호성
이것은 어휘나 구, 문장이 같은 소리로 나면서 한가지 이상의 뜻을 갖는 경우이다. 아랍인들은 말 그 자체를 강조하고 의미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동음이의의 익살(pun)을 부리기를 좋아한다. 이 동음이의의 익살이 모든 유머나 해학적인 담화속에 곧잘 나타난다.
●아랍어의 감정 지향성
아랍인들은 의사 소통과정에서 감정을 격렬히 발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아랍인들은 화난 몸짓과 큰 소리를 내어서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는데, 이것을 듣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마치 '긴박한'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적의까지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편에서는 이미 불쾌해졌을지 모르지만 아랍인들은 외국인들의 조용한 태도를 보고 오히려 무반응, 무감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만다. 이러한 사태는 서로가 상대방의 언어소통 양식에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랍어의 음악적이며 선율적인 속성은 아랍어의 특이한 언어 구조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 수많은 어형의 변화와 모음과 자음의 변화, 의미에 따른 억양의 강세가 아랍어의 음악성을이루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아랍어 동사의 완료 시제 변화와 미완료 시제 변화는 인칭, 성, 수에 따른 어미 변화로써 나타낸다. 아랍어는 액센트나 강세 보다는 음절 길이가 중요시되는 언어이다. 소리내어 읽을 때는 모든 음절을 그 길이 만큼 뚜렷하게 발음해야 한다. 어떤 음절이 다른 음절보다 강세가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이는 음절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음운 규칙상 연속적으로 자음 둘 이상이 이어질 수 없으므로, 자음과 모음의 변화가 음악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 지향성은 아랍 시나 산문, 특히 꾸란 낭송시 확연히 드러난다. 아랍의 전통적 시가는 각운과 운율을 갖고 있으므로 낭송시에는 거기에 따른 음악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상에서 아랍어의 구조적 음악성을 살펴보았는데 아랍어를 읽고 말한다는 단순한 행위에도 갖가지 음조의 변화를 수반하며, 이것은 아랍인들의 생리적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화자의 즉흥적인 감정 상태는 즉시 청자에게 이입되어 시 낭송 모임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대중 연설회에서 청중들은 고조된 분위기에 감탄사나 구호를 외치며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아랍어의 구조적인 음악성과 이에 따른 생리적 감정의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현상을 간파할 수 있다. 첫째, 아랍어의 음적인 아름다움과 단어의 조합에서 생겨나는 하모니와 리듬은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의미보다 낱말의 형태가 더 중요시되고, 발화시 낱말이 지닌 음향미학적인 효과를 더 고려할 경우, 이것이 언어적 모호성을 증대시켜 사고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결국 아랍인의 지적 작용을 저하시키게 된다. 둘째로, 아랍인의 언어 소통과정에서 대화 분위기를 비논리적 감정 교류에 몰고 감으로써 입씨름이나 알맹이 없는 논쟁을 야기케 한다.
●아랍어의 강조, 과장성
아랍인이 의사 소통과정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청중에게 강하게 인상 지우려 하기 때문에 강조(ta'kid)와 과장(mubalagha)에 흐르게 된다. 고대 아랍 시인이 시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중요하지 않은 주제들을 나열하여 서술한다든지, 또는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연설자가 명예, 과거의 영광에 대한 동경, 아랍어에 대한 긍지, 아랍 통일에 대한 염원 등의 주제를 반복함으로써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랍인은 사실보다 감정을 앞세우며 어느 유형의 의사 소통에서든지 강조와 과장을 내세움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랍어 자체에 강조와 과장을 위한 여러 언어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수식어로서 몇 개의 형용사를 나열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랍어 문체가 간결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으므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가지를 다른 말로 몇번이고 되풀이 표현하기도 하며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어휘가 쓰이기도 한다.
아랍 사회의 모든 의사 소통에서 아랍인들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조와 과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그 사람이 과장을 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간결하게만 전달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은 그 사람의 입장을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를 반대로 받아들일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랍인과의 의사 소통 과정에서는 그들의 언어심리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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